중국 허난성(河南省)에 위치한 카이펑(开封)은 오랜 역사와 황하 문명의 풍요로움을 간직한 도시입니다. 춘추전국시대부터 북송 시대의 수도였으며, 대운하와 황하를 통한 무역으로 한때 세계적인 대도시로 번영했던 곳입니다. 오늘날에도 청명상하원(清明上河园) 같은 테마파크와 전통 야시장 등이 살아 있어, 옛 도시의 정취와 현대적 즐길 거리를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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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펑(开封) 소개 및 특징
카이펑은 중국 7대 고도(古都) 중 하나로, 베이징·시안·난징·뤄양·항저우·안양과 함께 손꼽히는 역사 도시입니다. ‘도시 전체가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는 별칭처럼, 곳곳에서 북송(960~1127) 시절의 흔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동경(東京)’이라 불리며 중국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현재 인구는 약 500만 명 이상으로, 허난성 동부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리적 특징
- 위치: 허난성 동부에 자리해 있으며, 황하(黃河) 남쪽에 인접해 있습니다.
- 지형: 황하 유역의 비옥한 평야 지대에 자리해, 농업 생산이 발달했습니다.
- 기후: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성 기후로, 봄(4~5월)과 가을(9~10월)이 여행하기에 가장 쾌적합니다. 여름은 무덥고 습하며, 겨울은 비교적 춥지만 눈이 많이 내리지는 않습니다.
문화적 특징
- 북송 문화의 흔적: ‘청명상하도(清明上河圖)’에 담긴 북송 시대 시장 풍경을 테마로 한 공연, 거리재현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 황하 문명과의 결합: 황하를 통해 다양한 민족과 교류한 탓에 음식·언어·축제 문화가 다채롭게 발전했습니다.
- 야시장 전통: 밤이 되면 도시 곳곳에서 길거리 음식과 다양한 공예품을 파는 야시장이 열려 여행자에게 특별한 체험을 선사합니다.
카이펑(开封) 역사
고대부터 춘추전국시대(~ BC 3세기)
(1) 선사·고대 시대
- 선사 시대: 황하(黃河) 유역은 중국의 대표적인 문명 발상지 중 하나로, 카이펑을 포함한 허난성 지역 전반에 신석기 문화(예: 양사오 문화, 룽산 문화)가 광범위하게 분포하였습니다. 카이펑 주변에서도 선사시대 토기나 석기 유물이 발굴되어, 이 지역이 이미 아주 이른 시기부터 사람이 거주하던 곳임을 보여 줍니다.
- 하(夏)·상(商)·주(周) 왕조: 황하를 끼고 번성했던 초기 왕조들의 세력권 안에 있었으나, 카이펑 자체가 특별히 수도나 정치 중심지로 주목받았다는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다만 황하는 농업과 교통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에, 카이펑 지역은 꾸준히 인구가 늘고 경제가 발달하게 됩니다.
(2) 춘추전국시대
- 대량(大梁)의 시초: 춘추전국시대 전후로 카이펑은 “대량(大梁)”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당시에는 한·위·조·연·제·초 등 여러 제후국이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기였고, 카이펑은 황하와 회수(淮水)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군사적·경제적 가치가 매우 높았습니다.
- 삼진(三晉) 분립 이후: 기원전 403년, 진(晉)나라가 한(韓), 위(魏), 조(趙) 세 국가로 분열된 이후, 현재 카이펑 지역은 진류군(陳留郡)의 일부로 위나라(魏)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위나라는 대량 지역을 중요한 거점으로 삼아, 상업과 운송을 발전시켰습니다.
진(秦)·한(漢)·위(魏)·진(晉) 시대(BC 3세기 ~ AD 5세기)
(1) 진(秦)·한(漢) 시대
- 진나라 통일(기원전 221~기원전 206):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카이펑 지역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진나라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당시 전국적으로 군현제가 실시되어, 이 일대에도 군현(郡縣) 체제가 도입되었고, 황하 유역의 물류와 관개시설이 정비되었습니다.
- 전한·후한(기원전 202~서기 220): 전한과 후한 시기에 카이펑 지역은 중원(中原) 전체의 교통과 수운을 잇는 완충지로서 기능했습니다. 하지만 수도였던 장안(長安)이나 낙양(洛陽)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정치적인 비중은 크지 않았습니다. 다만, 황하를 통한 물류와 교역은 계속해서 카이펑을 발전시켰습니다.
(2)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
- 서진(西晉)~동진(東晉), 남북조: 위나라가 무너지면서 서진이 들어서지만, 곧 팔왕의 난 등 내부 혼란으로 중원이 크게 동요합니다. 이때도 카이펑 일대는 황하를 통해 남북으로 물자·인구가 교류되는 통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남북조 시기에는 북방 민족의 왕조들이 중원 지역을 차지했는데, 카이펑은 여러 왕조 사이에서 행정단위가 자주 바뀌었습니다.
- 삼국시대: 삼국 시기(위·촉·오)에는 카이펑이 진류군(陳留郡)에 속해 있었습니다. 진류군은 조조(曹操)의 근거지인 연주(兗州), 예주(豫州) 인근과 가까워 전략적 가치가 있었으나, 대규모 전투의 주 무대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수(隋)·당(唐)·송(宋)·원(元) 시대(6세기 ~ 14세기)
(1) 수(隋) 시대
- 수나라의 대운하 건설: 6세기 말에 들어선 수나라(581~618)는 수도 대흥(大興, 현재의 시안)와 동부 지역, 그리고 강남(江南)을 연결하기 위해 대운하를 건설했습니다. 이 대운하가 북쪽의 황하, 남쪽의 장강(長江), 동쪽의 회수(淮水) 등을 이어 주곡(主穀, 주요 곡창지대)의 물자를 수도로 들여오도록 한 것입니다.
- 카이펑은 황하와 인접해 있고, 대운하의 일부 구간을 통해 강남 지방과 연결될 수 있었기에, 농산물과 생필품이 집중되는 교역지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2) 당(唐) 시대
- 무리한 대운하 건설 등으로 수나라는 오래가지 못했고, 뒤를 이은 당나라(618~907)는 장안을 수도로 삼습니다. 카이펑은 여전히 장안·낙양·강남 지방을 잇는 중간 지점으로서, 황하의 물류 거점이자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계속해 왔습니다. 이후 당나라 말기 황소(黃巢)의 난 등 여러 혼란이 있었지만, 카이펑은 대운하와 육로 교통망에 힘입어 일대 상업도시로 성장합니다.
(2) 5대 10국(五代十國) 시대
- 5대 10국 시기: 당나라가 멸망한 뒤, 907년부터 979년까지 중국 북방에는 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가 차례로 들어서는 ‘오대(五代)’ 시기였고, 남쪽에서는 열 개의 소왕국이 난립하는 ‘십국(十國)’ 시대가 전개됩니다.
- 카이펑은 후량을 필두로 여러 북방 왕조들이 수도 혹은 전략적 근거지로 삼았고, 이 시기에 도성을 여러 차례 옮기거나 재건하면서 도시에 대한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3) 북송 시기
960년, 후주의 장수였던 조광윤(趙匡胤)이 황제로 즉위해 송나라를 창건합니다(이후 ‘송 태조’로 불림). 송 태조는 도읍을 카이펑(당시 명칭 동경, 東京)으로 정해, 이곳을 명실상부 중국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로 키워 냅니다.
- 인구 100만 명 이상 대도시: 11세기 초·중반 카이펑 인구는 이미 100만 명을 넘었다고 하며, 이는 당대 세계 최대 규모 수준이었습니다.
- 경제·문화 발전: 지폐인 ‘교자(交子)’가 유통되는 등 상업이 활성화됐고, 서민층까지 고도의 교육과 문화 혜택을 누릴 정도로 경제가 번영했습니다.
- 청명상하도(清明上河圖): 장택단(張擇端)이 그린 이 명화는 북송 시대 카이펑의 번화와 일상풍경을 보여 주는데, 도시의 다리·가옥·선박·상점·거리 풍경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담겨 있습니다.
- 국제도시로서의 위상: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아랍 지역 상인들도 카이펑을 찾았으며, 유대인 공동체(카이펑 유대인)의 형성도 이 시기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4) 금(金)·원(元) 시대
- 정강의 변(靖康之變, 1126~1127): 북송 중후기에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金)가 북쪽에서 강세를 떨치자, 결국 1127년 수도 카이펑이 함락되고, 송 휘종·흠종 두 황제가 포로로 잡혀가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를 ‘정강의 변’이라 부르며, 북송의 멸망을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 금나라 지배: 송 조정은 남쪽으로 도망쳐 임안(臨安, 현재 항저우)에서 남송(南宋)을 세우고, 카이펑을 포함한 황하 이북 지역은 금나라가 차지하게 됩니다. 카이펑은 한때 금나라의 ‘북도(北都)’로 지정되어 행정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잦은 전쟁과 황하 범람 등으로 성곽과 인구가 점차 쇠퇴합니다.
- 원(元)나라: 몽골 제국이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1271년 원나라를 세우면서, 카이펑은 행정도시로 재정비됩니다. 그러나 대도시로서의 위상은 옛 북송 시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또한 몽골의 남송 정복 전쟁으로 인해 중원 지역 전반이 소모전과 세금 부담에 시달렸고, 카이펑 역시 어려움을 겪습니다.
명(明)·청(淸) 시대 (14~20세기 초)
- 도성으로서의 기능 상실: 명·청 시기에 걸쳐 카이펑은 더 이상 수도나 정치 중심지가 아니었지만, 상업 도시로서 중부 지역 물류의 연결고리 역할을 계속 수행했습니다.
- 빈번한 황하 범람: 황하의 흐름이 자주 바뀌고 제방이 터지면서, 카이펑은 수해로 막대한 피해를 보곤 했습니다. 특히 1642년 명 말기, 관군이 반란군의 공격을 막고자 제방을 터뜨려 황하 물을 범람시킨 사건(‘카이펑 홍수 사건’)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로 인해 수십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한때 카이펑 시가지는 거의 폐허가 되기도 했습니다.
- 문화·종교의 다원성 유지: 명·청 시기에도 이전부터 이어져 오던 카이펑 유대인 공동체, 이슬람교 사원, 절 등 다양한 문화·종교 시설이 유지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황하 범람과 전란이 겹치며 전성기 때의 위엄을 되살리긴 어려웠습니다.
근현대 (20세기~현재)
- 청 말기와 중화민국 시대: 19세기 말~20세기 초 서구 열강의 침탈과 신해혁명(1911년) 등을 거치면서 허난성 일대 역시 혼란기를 겪습니다. 카이펑은 한동안 관립 기구나 군벌 할거(軍閥割據)의 기반지로 쓰이면서, 전쟁 피해로 인해 도시 인프라가 침체됩니다.
-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1949년 신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뒤, 카이펑은 허난성의 현급(县级) 도시 단위로 편입되고 이후 지급시(地级市)가 되었습니다. 전통 문화유산 보존과 산업화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으나, 정부 주도로 관광 인프라가 확충되면서 옛 유산이 복원·재현되고 있습니다.
- 관광 자원으로서의 카이펑: 현재 카이펑은 북송의 황궁 터(용정)와 철탑사, 청명상하원(청명상하도 테마파크) 등을 중심으로 한 역사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1990년대부터 진행된 도심 재개발과 전통 거리·야시장 복원 사업 덕분에, 중국 내외의 관광객이 꾸준히 증가하며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 문화 다원성의 흔적: 과거 국제도시였던 북송 시기의 유산은 아직까지 이어져, 카이펑에서는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도교 등 다양한 종교 유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카이펑 유대인과 관련한 기록은 중국 내에서도 희귀한 사례로, 학계와 여행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카이펑(开封) 여행 가이드
주요 명소
청명상하원(清明上河園)
카이펑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청명상하원(清明上河園) 은 절대 놓칠 수 없는 코스입니다. 송대(宋代) 풍경을 재현한 테마파크로, <청명상하도> 속에 등장하는 가옥·시장·다리·거리 풍경을 디테일하게 복원해 두었습니다. 특히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송나라 시대의 거리 공연, 마상무예(馬上武藝) 쇼, 민속 놀이 체험 등이 펼쳐져,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파크를 돌아다니다 보면 마치 시공간을 초월해 북송 시대로 잠시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용정공원(龍亭公園)
용정(龍亭)은 옛날 황제가 거처하던 궁전 터가 있던 곳이며, 현재는 공원 형태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서면 북송 시대의 웅장함이 어렴풋이 떠오르는데, 대형 문루(門樓)와 고전적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지요. 가을에는 국화축제가 열려, 형형색색의 국화꽃으로 꾸며진 공원 풍경이 일품입니다. 공원 뒤편으로 이어지는 성벽 일부도 복원되어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별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철탑사(鐵塔寺)
카이펑의 철탑(鐵塔) 은 송대에 건립된 탑으로, 사실은 철재가 아닌 갈색 도자기 벽돌로 지어졌는데, 겉보기 색깔이 마치 쇠처럼 보여 철탑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곳은 당시의 뛰어난 건축술과 예술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입니다. 탑 위로 올라가면 카이펑 시내 전경이 한눈에 펼쳐져, 옛 왕조의 도성을 조망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카이펑 밤시장
카이펑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건 바로 길거리 음식과 야시장 문화입니다. 송 대부터 번성했던 상업 도시답게, 해가 저물면 거리가 활기를 띱니다. 양고기 꼬치나 국수, 만두, 찹쌀로 만든 간식 등 다양한 먹거리를 파는 포장마차가 즐비합니다. 특히 매콤한 향신료를 사용해 맛을 낸 요리들이 인기인데, 북방 지역 특유의 진하고 짠맛과 어우러져 이국적이면서도 깊은 풍미를 자랑합니다.
추천 메뉴로는 후라(胡辣) 탕이라는 국물이 있습니다. 걸쭉하면서 매콤한 맛이 일품으로, 쌀쌀한 날씨에 특히 인기를 끕니다. 또, 안주용 튀김이나 전통 조리법을 적용한 송대(宋代) 스타일 과자를 맛보는 것도 묘미입니다. 카이펑의 저녁 풍경은 눈으로 보는 것만큼이나, 음식으로 입과 코를 즐겁게 만들어 주는 순간이죠.
문화 및 음식
지역 음식
- 후라(胡辣)탕: 카이펑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매콤·걸쭉한 국물 요리. 주로 고기·채소·면 사리를 함께 넣어 끓이며, 추운 계절에 특히 인기입니다.
- 양고기 요리: 북방 지역 특유의 양고기 꼬치나 스튜가 유명하며, 진하고 짭조름한 풍미가 일품입니다.
- 만두·국수: 허난성의 대표 음식으로, 간편하면서도 맛이 좋아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 즐겨 찾습니다.
문화 행사
- 국화 축제(10~11월경): 용정공원을 비롯한 카이펑 시내 곳곳에서 열리며, 각양각색의 국화 품종과 조형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 송나라 거리 문화 축제: 청명상하원에서 열리는 행사로, 전통 복장을 한 공연팀과 다양한 문화 공연이 진행됩니다.
레스토랑 추천
- 小宋城(샤오쑹청): 옛 송대풍 레스토랑과 음식점을 재현한 복합 문화 공간입니다. 송나라풍 인테리어와 공연이 결합되어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체험을 선사합니다.
- 开封第一楼(카이펑디이러우): 전통 만두와 국수로 유명한 식당이며, 허난성 요리의 정수를 맛볼 수 있습니다.
여행 계획 추천
교통편
- 항공: 카이펑 시내와 가장 가까운 공항은 정저우신정국제공항(郑州新郑国际机场)입니다. 인천, 김포 등 한국 주요 공항에서 직항 또는 경유 편으로 갈 수 있습니다. 공항에서 카이펑 시내까지는 버스나 택시로 약 1~1시간 30분 소요됩니다.
- 철도·고속철: 베이징·시안 등 주요 도시에서 카이펑 북역(开封北站)까지 운행하는 고속열차가 있습니다. 베이징 서역에서 카이펑 북역까지는 약 3~4시간, 시안 북역에서는 약 2~3시간 정도 걸립니다.
- 시내 이동: 택시, 버스, 혹은 공유 자전거(共享单车) 등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관광지 간 거리가 크게 멀지 않아, 짧은 거리 이동은 버스나 택시가 편리합니다.
여행 TIP
- 최적 시기: 봄(4~5월)과 가을(9~10월)이 날씨가 좋고 축제도 많이 열립니다.
- 준비물: 일교차가 있으므로 겉옷을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황하강 주변 산책을 계획한다면 편한 운동화 착용을 권장합니다.
- 현지어 팁: 카이펑 사람들은 표준어(보통화)와 약간의 지역 사투리를 섞어 쓰지만, 주요 관광지에서는 영어 간판이나 간단한 영어 소통도 가능합니다.
추천 일정
- 1일 차: 청명상하원 관람, 용정공원 산책, 야시장 음식 탐방
- 2일 차: 철탑사 방문, 구시가지 골목 투어, 황하 주변 자연경관 감상
- 3일 차: 카이펑 고궁 터 주변 및 박물관 관람, 기념품 쇼핑 후 출발
맺음말
카이펑은 황하 문명의 발자취와 북송 시대의 화려함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도시입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처럼 현대적 편의시설이 넘치는 곳은 아니지만, 그만큼 고풍스럽고 운치 있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번영의 극을 달렸던 북송의 흔적을 따라 청명상하원에서 시간 여행을 즐기고, 용정공원에서 고궁의 자취를 느끼며, 밤시장에선 수백 년 이어진 맛과 멋을 만끽해 보세요.
역사의 무대가 되었던 황하 강가를 거닐다 보면, 수천 년 동안 카이펑을 일궈온 사람들의 삶과 열정이 가슴 깊이 전해집니다. 중국사의 진정한 깊이를 느끼고 싶다면, 카이펑만큼 매력적인 선택지는 없을 것입니다. 오래된 골목과 잔잔한 황하 강물, 그리고 뜨끈한 후라탕 한 그릇이 선사하는 감동은 아마 쉽게 잊기 힘든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